B&B 2015 - Balboa and Blues 후기
다음달이면 춤을 배운지 정확하게 10년이 됩니다. 2,3년차 쯤 블루스 강습을 한 번, 발보아 강습을 두세 번 정도 듣고, 그 이후로는 최근까지 신나게 린디합만 추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왜 다른 춤(블루스, 발보아, 웨스트코스트스윙, 탱고 등)을 안배우냐"고. 간단히 얘기하자면 "린디합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걸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인데, 공식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다소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처음 배운 춤이 린디합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블루스나 발보아를 10년 추고 나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강습 한두번 들은게 고작인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겠죠. 다만, 아직도 매일 린디합을 춰도 모자란 사람이 기회비용을 활용하는 방식이 이런것 뿐입니다.
그런데 부인님 권유에 의해 작년 블루스캠프를 경험하면서 변화가 조금 생겼습니다.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확실히 린디합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수년만에 들어보는 강습도 힘들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B&B 행사는 타이틀에서부터 느껴지듯, 블루스와 발보아라는 두 가지 춤을 몸과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지금 구체적인 변화라면, 블루스는 가끔씩이라도 파티를 다니게 될 것 같고, 발보아는 고유한 멋이 있는 춤이란걸 알게 되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고작 그거냐고 하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저에게는 그만큼 큰 영향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강습이나 워크샵 경험이 많지 않아서 상대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우선 긍정적인 부분부터 말씀드리면, 무엇보다 강사들의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표정이나 몸짓에서부터 비즈니스 이상의 자발적인 열의가 느껴졌고, 강사 스스로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역으로 강습생 입장에서 흐뭇하기까지 했습니다. Bernard와 Anne-Helene의 경우 오랜 경륜에서 오는 안정적인 강습과 두 분의 호흡이 빛났고, Adamo와 Vicci의 경우 항상 에너지 넘치는 적극적인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강습이었습니다. Adamo, Vicci의 경우 발보아가 주가 아님에도 항상 파티 끝까지 남아서 모두에게 춤을 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세 커플 남을 때까지 있었다네요)
참가자 분들의 열기도 엄청났는데, 그 이상으로 실력들도 굉장해 보였습니다. 원래 나 춤추기 바빠서 다른 분들 춤은 안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보는 것 만으로도 눈이 즐겁다는게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전력을 다해 컴피티션에 임하는 분들을 보면 항상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험을 위해 대회에 나가는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고,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신 분들을 보면 도의적인 책임감까지 피할 수는 없네요. 저 때문에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하신 분들은 아무쪼록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면 그런 열기 때문에 이제는 "재미로" 춤을 추기가 더 힘들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단 블루스나 발보아 씬 뿐 아니라 린디합도 마찬가지지만, 점차 그룹 소속이나 행사 참여를 통한, 확연히 단순 취미의 범주를 벗어난 활동들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린디합 씬에서 얼굴 아는 분들이 있어서, 부족해도 먼저 춤을 권해주시고, 강습에서 실수해도 기분 좋게 넘어가 주셨지만,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면 왠지 소외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동호회 기반이 아닌 블루스나 발보아 씬은 제가 모르는 세상이다 보니 그림이 쉽게 그려지질 않네요.
열심히 준비해 주신 분들께서 섭섭해 하실지 몰라도, 다음에 더 좋은 행사를 부탁드리는 마음으로 아쉬운 부분도 적습니다. 신청, 신청 확인, 일정 등의 공지에 대한 일관되고 확실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정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토요일 5시 강습 종료 후 5시간 공백을 두고 파티를 시작, 새벽 4시 파티 종료 후 1시에 워크샵을 시작하는 일정은 늙은 몸으로 소화하기 다소 힘들었습니다. 일부 패키지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행사 운영에 관한 사항이라 뭐라 판단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제가 신청한 풀패키지의 경우는 체감상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황금연휴도 끝나버리고 밤새 두들겨 맞은 듯 피로와 근육통이 남았지만, 구체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무언가를 즐겁고, 의미있게, 열심히 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행사를 만드신 분들, 강사님들, DJ님들, 장소를 대여해 주신 분들, 공연하신 분들, 대회 출전하신 분들, 파티 즐기신 분들, 주차관리 아저씨 모두 감사드리며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하는 바 모두 이루시길 기원한다'는 표현이 진부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모두 원하는 바 이루셨길 바라며, 거듭 발전하는 B&B 행사를 통해 스윙댄스 씬 전체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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