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2015 서울국제마라톤 대회 (동아마라톤)



국내 마라톤은 3개 메이저 대회가 있다. 신문사에서 주로 대회를 주최하다 보니 (왜일까?) 공교롭게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중앙마라톤, 동아마라톤, 이른바 조중동이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마라톤 열풍에 힘입어 10km 번외 코스가 신설되긴 했지만, 이 3개 대회는 원래 풀코스만 존재하는 본격 마라톤 대회라 하겠다.

처음 풀코스를 뛴건 회사 동호회에서 따라간 2009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다. 고향에서 뛴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누군가 같이 뛸 수 있다는 (결국 금방 헤어지긴 하더라도) 점에서 용기를 내서 도전하게 되었다. 그 때 기록이 4:03, 4시간 이내를 말하는 sub-4에서 3분 쳐지는 기록이었다. 처음이라 기록을 전혀 신경 안쓰고 뛰었는데, 우연히 이렇게 되고 나니 욕심이 좀 생겼다.

하프코스와 풀코스는 단순히 거리가 2배인 것 외에 여러면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하프는 큰 부담 없이 언제라도 뛸 수 있는데 반해, 풀코스는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경험으로 일단 겁부터 나는 종목이다. 물론 하프코스도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풀코스도 조깅하든 뛰는 사람이 있을테지만, 최소한 나한테는 그만큼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 3분 차이로 sub-4를 놓치고 나니, 조금만 더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가서,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나는 sub-4까지는 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0년 중앙마라톤에서 저승사자와 실갱이를 하며, 3:56으로 sub-4를 달성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체중이 늘었다 (...) 조중동 3개 대회 중 동아를 못뛰어 본게 아쉬웠지만, 안그래도 후덜덜했던 코스인데 불어난 몸으로 도저히 다시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카프가드 덕을 톡톡히 보고 하프 기록이 10분이나 단축이 되자, 풀코스에 다시 욕심이 생겼다. 카프가드 빨로 종아리에 쥐만 안난다면 예전보다는 쉽게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K와 하프가 다른것처럼, 하프와 풀이 완전히 다른 종목이란걸 간과한거다. 종아리에 쥐가 났던건 종아리가 유일한 약점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약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부분이 튼튼한게 아니라, 종아리에 쥐가 먼저 나서 다른 부위에 이상 증후를 느낄 새가 없었던거다. 카프가드로 종아리를 보호하니 30km에서 허벅지 안쪽에 쥐가 나버렸다. 보통 종아리에 쥐가 나면 스트레칭을 해서 푸는데, 이건 생전 처음 쥐가 나보는 부위다 보니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지 몰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주변에는 의무지원 하나 보이질 않고, 그렇게 쥐가 풀릴 때까지 한참을 쩔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복장
추위 때문에 오늘은 뛰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프는 간혹 기록에 욕심 안내고 칭칭 동여메고 뛰어 본적이 있지만, 풀코스에서는 그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쇼츠에 긴팔, 비니, 장갑, 기부용 겉옷으로 입었는데, 모자 말고는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몸에 열이 나다가 식다가 하는 동안 긴팔은 소매를 걷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지만, 비니는 초반에 허리에 찬 이후로 쓸모가 없었다.

노상방뇨
욕심 있는 달리미들이 모이는 동아마라톤이다 보니 기록을 위해 별짓을 다하는 추태를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날이 춥다 보니 소변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건 그냥 무법천지였다. 골목, 자동차 뒤, 잔디밭 가릴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바지를 까고 노상방뇨를 해댄다. 이런 류의 충돌이 많았는지 경찰도 그냥 방관할 뿐이다. 봉사활동으로 응원 나온 여중생이 바로 뒤에 있는데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사람이 밀집한 출발지에서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못볼 광경까지 목격했다. 나중에 뒷풀이에서 무용담이랍시고 낄낄댔을거라는데 500원을 건다.

코스
도심 코스를 좋아하는 나로선 가장 좋은 풀코스 루트였다. 다만, 잠실대교를 건너면서 종합운동장이 보이자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짧은 거리를 요리조리 돌면서, 그것도 막판에 힘을 빼놓는 건 좀 아쉬웠다. 누굴 탓하리오, 코스를 숙지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음식
풀이 하프와 다른 또 한가지 차이는, 뛰면서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하프의 경우, 레이스가 끝날 즈음 허기가 지기 시작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완주해서 쳐묵쳐묵하면 되지만, 풀은 레이스 중반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다...) 그래서 이번엔 파워겔을 구입해서 출반 전 하나, 하프 즈음 하나를 먹었지만, 왠지 그걸로도 부족했다. 레이스 도중 섭취하는 음식은 몸만 무겁게 할 뿐 에너지원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지만, 배가 고픈채로 나머지 하프를 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나나 1개, 초코파이 2개를 먹었다. 그랬더니 또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뛰면서 졸리는거다. 시험 삼아 살짝 눈을 감았더니 그대로 잠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Gear S
야심차게 준비한 스마트워치 Gear S는 제 기능을 다 못했다. 하프만에 배터리가 15% 남아서 경고창이 뜬거다. 덕분에 음악도 없이 2시간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하프는 그대로 이 장비로 가고, 다음에 혹시 풀을 뛰게 되면 다른 구성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조중동 3개 풀코스는 완주했지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다. 의욕있게 도전했지만 기록은 겨우 1분 단축되었다. 춤 10년, 마라톤 7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무릎 통증이 생겼다. 지금도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곡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근육통이라면 근육이 재생하면서 더 발달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지만, 관절 부위의 통증은 얘기가 다르다. 잘못하면 향후 운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풀코스는 자제하고, 체중을 더 줄이거나, 30km 대의 코스를 먼저 시험삼아 뛰어봐야 할 것 같다.



기어S를 구매하면서 장비가 바뀌었다. 스마트폰+암밴드, 이어폰 일체형 MP3를 빼고, 기어S,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대체했다. 백업용으로 차고 나간 시계가 없었으면 하프 밖에 못버티는 ㅈㄹ 기어S 덕분에 제대로 물먹을뻔 했다.


이 사진 찍다가 쥐날 뻔 했다.
마라톤 인증샷을 쿨하게 찍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래도 1분 단축했네.


댓글

  1. 노상방뇨 ㄷㄷㄷ 그 악조건속에서도 1분이 단축되셨으니 몇달후면 다시 욕심이 생기시겠는걸요^^ 축하드립니다.
    (전 노래를 들으면 그 박자에 제 페이스가 무너지더라고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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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1. 아냐 안생겨;; 지금도 무릎에 무리 갔을까봐 불안불안 해. 나도 노래 들으면서 템포 때문에 내 페이스가 흔들리진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그것 마저 없으면 너무 심심해서; Google VR 같은게 상용화되면 그거 쓰고 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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