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춤의 시작, 여행의 시작

* Dance & Tour의 "JP馬군의 We Lindy Hop the World" 연재 칼럼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가라
어디서 들은 말인지 그냥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질 않지만, 주변 사람들, 주로 후배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가라" "돈은 나중에 벌어서 갚을 수 있지만, 돈이 생겼을 땐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하지 못한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긴 학창 시절이 끝나고 30대가 되어 내 삶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취업과 함께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최소 1년에 한 번은 새로운 나라를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욕심이 점점 커져서 입사 3년차인가부터는 여행 외의 목적으로 휴가를 쓰는것조차 아까워졌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프다고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휴가도 제법 늘어났지만 여행에 대한 욕심은 채워질 줄을 모른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너무 작다.

춤의 시작
내 인생을 크게 바꾼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춤, 여행,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가 내게 찾아온 일련의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그 중 한가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다른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스물아홉의 어리지 않은 나이에 춤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 겪었던 것처럼, 소위 말하는 '춤판'은 듣도 보도 못한 신세계였다. 무언가에 그렇게 미쳐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삶은 하루하루가 긍정적인 에너지와 흥분으로 넘쳤고, 왜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대한민국의 20대로 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인생의 즐거움은 춤 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의 시작
스물 아홉, 취업을 하기 전까지 여권이 없었다. 삶에 무언가 결핍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어떤 새로운 시도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처음 누군가에게 이끌려 댄스홀에 발을 디뎠던 것처럼 말이다. 지터벅(입문 과정)의 동기애는 각별하다.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순수하게 즐거운 일을 함께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현실적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만난지 1년이 채 안된 사람들과 절친이 되고, 어떤 일이든지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지터벅 동기들과 함께 간 내 첫번째 여행은 2005년 태국의 푸켓이었다. 지터벅 동기 중에 거주지가 원래 푸켓이고 사정상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지터벅을 배웠던 누나가 있었다. 태국은 말 그대로 그 누나의 홈그라운드였고, 같이 갔던 일행은 아무 준비도 필요 없이 신나게 놀다가 오기만 하면 됐었다.

인연의 시작
두번째 여행은 이웃 동호회의, 일본 회사에 다니던 친구의 인솔(?)로 2006년 도쿄, 세번째는 같은 동호회의, 중국에서 유학을 했던 친구의 인솔로 2007년 상해, 네번째는 일본에서 회사에 다니던, 동호회 지인의 지인의 인솔로 같은 해 Osaka Mini Exchange였다. (당시에는 규모 때문인지 행사명에 'mini'가 붙어있었다.) 상해 재즈 콘서트장에서 Shanghai Swings 분들과 잠시 조우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춤을 목적으로 여행을 간건 오사카가 처음이었다. 그 다음 여행인 홍콩부터는 홀로서기에 성공했지만, 춤과 사람의 인연은 신기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했다. 누군가는 한국으로 찾아왔고, 누군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세상은 넓지만 플로어는 한정되어 있고, 그 제한된 공간에서 댄서들은 인연을 계속 이어간다.

We Lindy Hop the World
처음으로 나 혼자 계획을 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여행을 했던건 2008년 Hong Kong Lindy Exchange 였다. (홍콩은 Exchange와 Festival을 번갈아 개최한다.) 원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잘 강요(?)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혼자만의 여행이 되버린 것도 있지만, 속사정을 말하자면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던 그녀에게 동행을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은 이유도 있었다. 보란듯이 혼자서 신나게 놀다 오겠노라고 했지만, 결과는 반반일까. 홍콩이라는 지역과 행사 자체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지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뭔가 허전함이 계속 느껴졌다. 누구는 혼자 다니는 여행이 좋다고 하던데, 각자의 성향이 다르고, 나는 그 다른 타입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나는 여행에도 파트너가 필요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그녀도 나만큼이나 춤을 좋아하게 되었고, 천천히 서로의 감정과 진심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2010년 Vietnam Lindy Exchange에 함께 가기로 했고, 나는 여행용 복대에 청혼반지를 몰래 넣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우리'의 프로젝트인 'We Lindy Hop the World'가 시작되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학동) 통영다찌 ★★★★

(세화) 청파식당횟집 ★★★★★

(세화) 청파식당횟집 ★★★